신뢰 회복, 단순한 신차 투입으론 부족하다

한국 완성차 시장의 오랜 강자였던 쉐보레가 이제는 존재감을 잃고, 소비자와 산업계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때 국내 자동차 판매 3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브랜드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2024년 상반기, 쉐보레의 국내 신차 등록 대수는 8,411대. 이 수치는 2015년과 비교하면 90%에 달하는 하락폭을 보여주며, 이제는 수입차 브랜드보다도 낮은 위치로 주저앉았다.

이처럼 극적인 퇴조는 단순한 모델 부족이나 하이브리드 부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과거의 신뢰로 쉐보레를 선택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시장과 기술 흐름을 읽지 못한 전략,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가 브랜드 이미지를 짓누르고 있다.

시장에 남은 쉐보레, 모델은 세 손가락에 꼽힌다

쉐보레 신차 부족 판매 감소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트랙스, 트래버스, 타호 등 다양한 SUV 라인업이 쉐보레를 대표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차량은 트랙스 크로스오버, 트레일블레이저, 콜로라도 등 단 3종. 그나마 트랙스가 상반기 6,688대 팔리며 체면을 지켰지만, 전년 대비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트래버스와 타호는 이미 단종 수순을 밟았고, 신규 모델 출시는 2년 가까이 멈춘 상태다.

신차 기대감…그러나 현실은 불확실

쉐보레 신차 부재 판매 부진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업계에선 트래버스, 이쿼녹스 완전변경, 그리고 이쿼녹스EV가 돌파구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출시 계획은 여전히 오리무중. 지난해 GM 한국사업장이 이쿼녹스EV의 국내 도입 의사를 밝혔고 환경부 인증까지 마쳤지만, 실제 시장 출시 시점은 공개되지 않았다. 기술 혁신에 대한 소비자 기대가 높아졌음에도, 쉐보레는 여전히 움직임이 더디다.

가격 경쟁력 상실, SUV 격전지에서 고전

쉐보레 SUV 판매 부진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국내 SUV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 수입차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가격 경쟁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쉐보레는 대부분의 신차를 수입 판매 체제로 전환했으나, 이 방식은 환율 변동과 관세 부담 등으로 인해 가격 매리트를 잃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단순한 신차 투입만으론 소비자 마음을 다시 얻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관세 변수, 철수설에 기름 붓나

2023년 상반기와 비교해 GM 한국사업장의 판매량은 약 40%나 감소했다. 2016년의 영광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설상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부활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부평·창원공장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차량의 수익성마저 위협받는다. 이와 같은 대외 변수는 쉐보레의 국내 사업 철수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캐딜락마저 고전, 그룹 전체가 위기

쉐보레를 관리하는 GM 한국사업장 산하의 캐딜락조차도 상반기 판매량 327대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주요 라인업도 이미 대부분 국내에서 사라졌다. 이는 단순히 쉐보레의 문제가 아니라, GM 그룹의 한국 전략 자체가 재정립되어야 할 시점임을 시사한다.

전략의 재설계, 신뢰 회복 위한 장기 로드맵 필요

지금 쉐보레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신차 하나가 아니다. 변화하는 시장 구조와 소비자 트렌드에 맞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비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실행 계획이 절실하다. 신뢰를 되찾기 위한 쉐보레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